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작년 이맘때쯤이었어요. 봄이라 그런지 유난히 피곤함이 몰려왔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잠을 제대로 잔 것 같은데도 계속 머리가 무겁고, 계단 몇 개만 올라가도 숨이 찼어요. 처음엔 단순히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잖아요. 계절 탓, 스트레스 탓, 나이 탓… 그렇게 핑계를 대며 그냥 넘기고 있었죠.
그날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이었어요. 구내식당에 줄 서 있다가 앞에 있던 동료가 갑자기 물었어요. “형, 건강검진 했어?” 순간 당황했죠. 무슨 얘기를 갑자기 하나 싶었는데, 자기도 얼마 전에 위 내시경 받았는데 용종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겉으론 멀쩡했는데 조직검사까지 받았다고요. 그 얘기를 듣고 괜히 제 배를 한번 만져봤어요. ‘나는 괜찮겠지’라는 근거 없는 안심과 함께요.
무료검진 대상이라는 걸 처음 알았던 날
그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다가 슬쩍 아내에게 말했어요. “나 올해 건강검진 대상이래. 무료래.” 그랬더니 아내가 바로 말하더라고요. “응, 50대부터는 국가에서 2년에 한 번씩 해줘. 공단에서 우편도 왔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어요.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책상 서랍 뒤졌더니 정말 있었어요. 건강검진 안내서. 그동안 그냥 광고물인 줄 알고 쌓아두기만 했던 그 종이들이, 사실 나한테 보내는 중요한 편지였던 거죠.
괜히 민망하고 당황스러웠어요. 지금까지 무심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거든요. 평소에 뭐든 잘 챙긴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중요한 건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던 거죠.
검진 예약부터 꼬였던 그날
그래도 마음 먹고 검진 예약을 하기로 했어요. 안내문에 적힌 병원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려봤는데, 대부분 예약이 꽉 찼다고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연락한 동네 내과에서 겨우 다음 달 평일 오전 타임으로 예약이 잡혔어요.
그런데 검진 당일, 저는 멍청하게도 금식을 안 하고 밥을 먹어버렸어요. 너무나 습관처럼 아침밥을 챙겨먹은 거죠. 간호사분이 “식사하셨으면 위 내시경은 못 하세요”라고 했을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그 길로 허탕치고 집에 돌아와야 했죠. 아내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 괜히 쭈뼛거리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렸어요. 진짜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두 번째 시도, 수면내시경 앞에서 겁먹은 나
다행히 병원에서 재예약은 빨리 잡혔어요. 이번엔 철저하게 준비했죠. 전날 밤부터 금식, 물도 조심, 아침 일찍 도착. 수면 내시경은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무서웠어요. 마취 주사 맞기 전까지 마음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혹시 내가 모르게 무슨 병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이렇게 검사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나이든 거야?’
마취 후 정신이 들었을 땐 회복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입안에서 이상한 쓴맛이 났어요. 간호사가 “잘 끝났어요”라고 말해줬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어요.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겠더라고요.
기다림의 시간과 낯선 두 글자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왔어요. 그 사이 마음은 천 번도 더 오락가락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믿으려 하면서도, 괜히 검색창에 ‘위 내시경 이상 소견’ 같은 단어를 쳐보기도 했어요. 별별 병명이 다 보이니까 더 무서워지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무지해서 그런 거겠죠.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경미한 위축성 위염 소견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위축성’이라는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일 줄 몰랐어요. 괜찮다는 말 뒤에도 병명이 붙는다는 게 처음엔 참 낯설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생활습관만 조심하면 된다고 하셨고, 약도 따로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제야 숨을 제대로 내쉴 수 있었죠.
내가 직접 겪은 무료 건강검진 과정 정리표
단계 | 그때 느낀 감정 | 실제 상황에서 있었던 일 | 배운 점 또는 변화된 점 |
---|---|---|---|
우편물 발견 전 | 무관심, ‘나랑 상관없겠지’ | 건강검진 안내문을 광고쯤으로 여김 | 나도 어느덧 국가 대상자라는 걸 알게 됨 |
검진 예약 시도 | 당황, ‘왜 이렇게 복잡해?’ | 병원 예약이 많아 여러 군데 전화해야 했음 |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움 |
첫날 실수 | 민망함, 자책감 | 금식 안 하고 아침 먹어서 위내시경 못 받음 | 사소한 준비 하나가 흐름을 바꾼다는 걸 느낌 |
수면내시경 당시 | 긴장, 두려움 | 마취 전 무섭고 낯설었지만 결국 잘 끝남 | 두려움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님 |
결과 기다리는 중 | 불안, 괜히 인터넷 검색 | ‘위축성 위염’이라는 단어에 괜히 겁을 먹음 | 정보를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무서움 |
결과 확인 후 | 안도, 후련함 | 큰 이상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 | 건강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 |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그 경험
그 이후로 제 생활이 조금씩 달라졌어요. 건강에 무심했던 저였지만, 이제는 제 스스로의 몸을 이해하려 노력해요. 식사도 예전처럼 무작정 많이 먹지 않아요. 밤마다 라면 끓여 먹던 버릇도 어느 날부터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회사에서도 후배들에게 괜히 잔소리처럼 한마디 하게 돼요. “너네 건강검진 대상 되면 무조건 해. 안 하고 지나치지 마.” 그 말이 이제는 그냥 조언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은 경고처럼 느껴져요.
가족과 건강 이야기 나누게 된 변화
아내와 대화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주로 건강 이야기예요. 아내는 예전부터 한의원 가고, 영양제 챙겨 먹고 그런 걸 잘했거든요. 저는 귀찮다고 피했는데, 이제는 먼저 물어보게 돼요. “요즘 뭐 챙겨 먹어?” “비타민은 뭐가 나아?”
딸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건강교육 받았다며 오더니 묻더라고요. “아빠도 병원 무서워?”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대답은 진지하게 했어요. “응, 아빠도 무서워. 그래서 더 열심히 받으려고 하는 거야.” 아이에게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제 몫이더라고요.
50대에 처음 받은 건강검진 후 바뀐 생활 습관
예전 모습 |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어요 | 달라지게 된 계기 |
---|---|---|
밤마다 라면 먹고 잤음 | 라면은 가끔, 저녁엔 가볍게 샐러드로 마무리 | 위 내시경 결과 듣고 식습관을 자연스레 바꿈 |
건강보조제 하나도 안 챙겼음 | 아내 추천으로 비타민 B, 마그네슘 섭취 중 | 피로감이 심해져서 먼저 물어보게 됨 |
건강은 늘 뒷순위였음 | 달력에 검진일, 운동일 표시하며 관리 중 | 처음으로 ‘내 몸’을 스스로 챙기고 싶은 마음 생김 |
병원은 아프면 가는 곳이라 생각 | 아프기 전에 가는 게 병원이라는 걸 깨달음 | 검진으로 조기 진단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됨 |
딸아이와 건강 얘기 안 했음 | “아빠도 병원 무서워”라는 말로 대화 시작 | 가족과 건강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걸 경험함 |
나에게 남은 말 한마디
검진을 마치고 나서 며칠 뒤, 거울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이제부터는 내 몸의 관리자가 돼야겠다.’ 누군가 챙겨주길 바라는 시기는 끝났다는 거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성숙한 어른의 자세 같았어요.
가끔 그런 생각도 해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건강했을까? 아니면 이 타이밍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였던 걸까?
누군가 저에게 50대가 어떤 시기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 몸에 귀 기울이게 되는 시기요.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드디어 들리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그 목소리를 놓치지 마세요. 내 몸은 나보다 항상 먼저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알려주는 게 바로 ‘검진’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