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온 허전함 하나
50세 생일을 앞두고 있던 어느 가을날이었어요. 대단한 날도 아닌데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좀 묵직하더라고요. 늘 다니던 회사인데 엘리베이터 타면서도 평소랑 다르게 말수도 줄고,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제가 다니는 곳은 중견기업이에요. 회사는 나쁘지 않아요.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연차도 잘 쓰고, 조직 분위기도 나쁘지 않죠.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었어요. 근데 그날, 회사 메신저에서 부장님 정년퇴직 소식이 올라왔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유독 크게 보였어요.
“벌써 그 선배님도 퇴직이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게 되겠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앞으로 10년 남짓. 그동안 내가 준비한 게 뭐가 있더라? 생각해보니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국민연금 말고는… 연금보험 하나도 없었고, 퇴직연금은 회사에서 해주는 걸로 자동 가입돼 있는 수준.
그날은 집에 와서 소파에 주저앉자마자 텔레비전도 안 켰어요. 그냥 멍하니 창밖만 보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검색창에 써봤어요.
“50대 노후 준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노후 준비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검색 결과가 수없이 나오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럽더라고요.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IRP, 개인연금, ISA… 뭔가 익숙한 단어 같으면서도, 정확히 아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하나하나 눌러보며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막히더라고요. 조건, 수령나이, 세액공제, 연금개시, 금융상품 비교… 읽다가 머리가 띵했어요.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날 밤 3시간 넘게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결국 한숨만 쉬고 말았어요.
“아,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게 제 첫 시작이었어요. 무지함과 당황스러움으로 점철된, 시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런 시작이요.
나도 처음엔 몰랐던 ‘노후 준비 체크리스트’ 메모
항목 | 내가 처음 했던 행동 | 지금의 방식 | 느낀 점 |
---|---|---|---|
국민연금 | 그냥 내기만 했음 | 예상수령액 조회, 추가납입 검토 | 생각보다 받을 돈이 적어서 놀람 |
퇴직연금 | 회사에서 자동으로만 가입됨 | 운용 상품 직접 확인함 | 수익률 낮은 상품은 바꾸는 게 맞음 |
IRP 계좌 | 어렵다고 미룸 | 은행 앱으로 개설 후 자동이체 | 가입까진 힘들었지만 하길 잘함 |
보험 정리 | 여러 개 가입한 채 방치 | 불필요한 것 정리, 갱신형 확인 | 소액이라도 아끼니 금방 차이 남 |
금융 상품 비교 | 그냥 지인 말만 믿음 | 조건 꼼꼼히 따져봄 | 말만 듣고 하면 낭패, 스스로 공부 필요 |
건강관리 | 신경 안 씀 | 매일 새벽 걷기 시작 | 건강이 자산이라는 말, 진짜 맞음 |
처음 시도한 IRP… 헷갈림의 연속
몇 주 뒤,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한테 IRP 얘기를 꺼냈어요. 그 친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자동이체로 불입하고 있다더군요. 말하면서 본인이 만든 IRP계좌 앱도 보여주는데, 그걸 보는 제 마음은 괜히 초라했어요.
그래도 따라는 해보자 싶어서 은행 어플을 켜봤는데, 어찌나 단계가 많은지… 가입부터 상품 선택, 운용 비율까지. 진짜 헷갈려서 중간에 두세 번은 포기하려고 했어요.
더 난감했던 건, 제가 선택한 펀드 상품이 수수료가 비싸고 수익률이 안 좋은 상품이었단 거예요. 나중에 알고 진짜 당황했어요.
“아니, 이렇게 중요한 걸 왜 아무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
고작 30만 원 넣는 건데도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괜히 손해보는 기분도 들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엉뚱한 데 쓰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고요.
한참을 헤매다 만난 작은 터닝포인트
그렇게 몇 달이 흘렀어요.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스스로도 뭘 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어요. IRP만 겨우 개설하고, 국민연금은 조회만 해놓은 수준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사내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중장년 자산 설계’ 강의가 있다는 공지를 보게 됐어요.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강사님이 첫 마디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당신의 노후는 당신이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심장을 콕 찌르듯 박히더라고요. 순간 부끄러웠어요. 그동안 저는 모든 걸 아이 중심, 집안 중심으로만 살아왔거든요. 제 노후는 마치 남 얘기처럼 밀어둔 거죠.
강의가 끝나고 집에 와서 다시 엑셀을 열었어요.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통장마다 어떤 용도로 쓰고 있는지, 예적금은 어디 있는지, 보험은 몇 개나 되는지, 대출은 얼마 남았는지…
하루 이틀 걸리는 작업이 아니었어요. 주말마다 시간 쪼개서 하나씩 파고들었죠.
실수도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졌어요
중간에 엉뚱한 보험에 가입할 뻔한 적도 있었고요. 지인이 추천해준 종신보험이었는데, 알고 보니 연금 전환이 안 되는 상품이더라고요. 가입 직전 단계에서 확인하고 겨우 빠졌어요.
그리고 국민연금 추가납입 신청도 한 번 잘못해서, 지역가입자로 잘못 넘어가는 바람에 국민연금공단에 전화 수십 번 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 실수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하나하나 더 꼼꼼히 보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저만의 기준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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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안 되는 건 무조건 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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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은 내가 직접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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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더라도 자동이체로 꾸준히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하루하루
이제 저는 매월 IRP에 30만 원씩, ISA계좌에 10만 원씩 넣고 있어요. 보험도 보장성으로 필요한 것만 정리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라 생각해서 운동도 다시 시작했어요. 요즘은 새벽에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노후 준비는 거창하게 뭘 많이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결국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었어요.
회사에서 퇴근하고 혼자 앉아 통장 정리하고, 숫자 맞추고, 미래를 상상하는 그 시간이 참 묘하게 든든해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큰돈이 생긴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준비하고 있다’는 그 감각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더라고요.
내 월급에서 따로 떼어낸 ‘진짜 나를 위한 자동이체’
사용처 | 월 자동이체 금액 | 설정 계기 | 나중에 느낀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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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P 연금 계좌 | 300,000원 | 세액공제도 되고 노후 대비도 되니까 | 연말정산에서 혜택 커서 만족감 큼 |
ISA 계좌 | 100,000원 | 비과세 혜택 알아보고 관심 생김 | 차곡차곡 쌓이는 맛이 있음 |
보장성 보험 2건 | 120,000원 | 꼭 필요한 보장만 남기기로 결정함 | 보험료 부담 줄고 정리된 느낌 |
건강복지관 헬스 | 35,000원 | 건강이 자산이라는 말 듣고 등록 | 컨디션이 훨씬 좋아짐 |
생활비 통장 분리 | 50,000원 | 충동지출 줄이려고 따로 떼어놓음 | 적은 돈이라도 따로 관리하니 편함 |
마음속에 남은 말, 아주 작지만 확실한 조언
“노후 준비는 마음먹은 그날이 가장 빠른 날이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두려웠고, 무지했고, 귀찮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는 알겠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라면, 지금 조금이라도 준비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서도, ‘나는 너무 늦었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신다면…
진짜 괜찮아요. 저도 그랬어요.
작은 검색 하나, 잘못된 시도 하나, 엉뚱한 보험 상담 하나… 그런 우왕좌왕 속에서도 결국 사람은 배워가더라고요.
지금도 저는 완벽하게 준비된 건 아니에요. 아직도 헷갈릴 때 많고, 계획이 틀어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제는 확실히 알죠. 내 노후는,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저는 오늘도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내 미래의 나를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