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머리가 복잡했던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실적 보고를 준비하느라 며칠째 늦게까지 남아 있었죠. 아침부터 회의에 시달리다 보니 머릿속이 온통 숫자뿐이었어요. 매출, 단가, 원가, 수익률… 그렇게 숫자만 보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 냄새가 그리워졌습니다. 주말이 되자마자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내려갔죠. 공기도 좋고, 밥맛도 좋고, 마음이 조금씩 풀리더군요. 그런데 뜻밖의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바로 ‘콩 한말은 몇키로일까?’ 이 단순한 궁금증이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첫 만남 – 숫자에 지친 어느 주말의 호기심
장터에서 시작된 의문
시골 장터는 여전히 북적거렸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며, 정겨운 말투로 흥정을 하더군요. 그날 어머니가 “콩 좀 사야겠다”며 제 손을 이끌었어요. 장터 한쪽에서 어머니가 상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한말만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멈췄습니다. ‘한말이라니… 그게 도대체 몇 킬로지?’ 회사에서는 g, kg 단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어머니가 봉지를 받아 들고 웃으시는데, 괜히 저 혼자만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이 만든 혼란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께 물었죠.
“엄마, 콩 한말은 몇 킬로야?”
“글쎄, 한말이면 한말이지. 그게 왜 궁금하니?”
그 대답이 너무 단순해서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세상 모든 게 숫자로 계산되던 제 삶 속에서 ‘그냥 한말’이라는 말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어요.
밤이 되자 검색을 해봤습니다. 여러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대략 18리터, 무게로는 약 7.5kg쯤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콩의 종류나 건조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다시 혼란이 밀려왔어요. ‘그럼 정확히는 몇 킬로란 말이지?’ 그때부터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시행착오 – 콩 한말을 재보겠다는 고집
회사원식 실험 정신
다음 날, 마당에 콩을 말려놓은 어머니를 도우면서 저울을 들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셨죠.
“이걸 무게로 재보겠다고? 참 별걸 다 한다.”
그 말에도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실험이자 도전이었죠. 한 되씩 덜어 무게를 재기 시작했습니다. 10되가 한말이라니까, 이걸 곱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결과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건 7.2kg, 어떤 건 7.8kg… 품종에 따라, 수분에 따라 다 달랐습니다. 회사 보고서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더군요.
이상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늘 ‘정확함’이 중요했는데, 여기서는 아무리 재도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살짝 짜증이 났어요. 그런데 동시에 묘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세상엔 이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의 한마디
아버지가 옆에서 지켜보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왜 재냐? 옛날엔 손으로만 봐도 다 알았어. 이 정도면 한말이지.”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손으로 느끼고, 눈으로 가늠하는 감각. 그건 회사에서 배운 논리나 계산으론 설명할 수 없는 세계였어요.
밤에 혼자 앉아 표를 만들었습니다. 엑셀에 ‘콩 종류, 되 무게, 평균값’ 이런 식으로요. 마치 업무 보고서를 정리하듯 수치를 적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리를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값이 없다는 게 오히려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죠.
콩 한말의 실제 무게 비교와 품종별 특징
| 구분 | 품종 이름 | 평균 무게(1말 기준) | 알 크기 및 밀도 | 주요 용도 | 현장에서 느낀 차이점 |
|---|---|---|---|---|---|
| 1 | 백태(흰콩) | 약 7.4~7.8kg | 중간 크기, 밀도 높음 | 두부, 콩국수용 | 삶으면 부드럽고 단맛이 강했습니다. 물을 많이 흡수해 두부를 만들면 질감이 고왔어요. |
| 2 | 서리태(검은콩) | 약 7.0~7.3kg | 크고 단단함 | 밥, 콩자반용 | 무게는 조금 가벼워도 포만감이 크고, 밥에 섞으면 고소한 향이 진하게 났습니다. |
| 3 | 쥐눈이콩 | 약 6.8~7.2kg | 작고 밀도 높음 | 약재, 발효식품 | 알이 작아서 같은 양이라도 더 무거워 보였습니다. 삶으면 색이 진해지고 맛이 구수했어요. |
| 4 | 녹두 | 약 7.5~8.0kg | 작고 단단함 | 녹두전, 숙주 생산 | 다른 콩보다 수분이 적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건조도에 따라 차이가 컸어요. |
| 5 | 메주콩 | 약 7.6~8.1kg | 크고 거칠음 | 된장, 간장용 | 크기가 커서 보기엔 많아 보였지만 실제 무게는 비슷했습니다. 발효용으로 적합했어요. |
전환점 – 숫자보다 손의 감각을 믿게 된 날
어머니의 손끝에서 배운 것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두부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삶은 콩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어머니는 콩의 무게를 재지 않았습니다. 그냥 손으로 양을 가늠하고, 눈으로 끓는 물의 상태를 살피시더군요. 그렇게 만들어진 두부는 부드럽고 고소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콩 한말은 몇키로인지보다, 그 한말이 만들어내는 손맛과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요. 숫자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감각이 존재했어요.
장터에서 다시 만난 ‘한말’
며칠 뒤 장터에 다시 나갔습니다. 혼자 콩가게 앞에 서서 물었죠.
“이거 한말이면 몇 킬로쯤 되나요?”
주인 아저씨가 웃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그게 딱 몇 킬로라고 할 수 없어요. 그냥 이만큼이면 한말이지.”
그 말에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저마다의 기준이 있고, 그 안에서 통하는 암묵적인 신뢰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도시에서는 잊고 살던 ‘감’이라는 게 이곳엔 살아 있었어요.
콩 한말의 단위 환산과 생활 속 체감 비교
| 항목 | 전통 단위 기준 | 환산 수치 | 생활 속 비유 | 느낀 점 |
|---|---|---|---|---|
| 1 | 1말(十되) | 약 18리터, 평균 7.5kg | 생수병(2L) 9개 정도 | 생각보다 부피가 크지 않아 놀랐습니다. 손으로 들면 묵직하지만 들 수 있을 정도였어요. |
| 2 | 1되 | 약 1.8리터, 평균 750g | 밥그릇 약 2.5개 분량 | 한 되만으로도 두부를 한 모 만들 수 있어 실용적이라 느꼈습니다. |
| 3 | 1홉 | 약 0.18리터, 평균 75g | 종이컵 절반 정도 | 이렇게 작은 양도 삶으면 꽤 많은 콩나물이 나와서 신기했습니다. |
| 4 | 1말 분량의 콩 삶기 시간 | 평균 1시간 10분~1시간 30분 | 냄비 2개 분량 |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어머니의 수고를 새삼 느꼈습니다. |
| 5 | 두부 산출량(콩 한말 기준) | 약 11~12모 | 가족 5인 기준 3일치 | 한말이 이렇게 넉넉한 양이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
지금의 생각 – ‘콩 한말은 몇키로일까’보다 중요한 건
삶의 무게를 재는 법
요즘은 콩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콩 한말은 대략 7.5kg쯤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그래도 저는 그렇게 단정 짓지 않습니다.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어머니의 한말과 장터의 한말은 분명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죠. 정성입니다.
회사에서도 그 감각을 조금씩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매출이나 효율 같은 숫자만 중요했는데, 요즘은 그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어떤 동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과를 냈는지, 얼마나 마음을 쏟았는지를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 보면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보이더군요.
숫자보다 마음이 무겁다는 걸
그날 이후로 저울을 덜 꺼내게 됐습니다. 예전엔 정확하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지금은 대충이라도 충분하다는 걸 압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장터의 온기처럼, 세상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게들이 존재하니까요.
회사 동료가 농담처럼 묻더군요.
“그럼 결국 콩 한말은 몇키로예요?”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사람 마음마다 달라요. 어떤 날엔 7킬로, 어떤 날엔 10킬로일 수도 있죠.”
작은 결심 – 내 삶의 한말을 채워가는 중
요즘 주말마다 조금씩 텃밭을 가꿉니다. 작은 콩 몇 줌을 심어두었는데, 싹이 트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합니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말이 떠오릅니다.
“콩은 마음을 알고 자란다.”
그 말이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정성껏 돌보면 작아도 단단히 자라나더군요.
어느 날 퇴근 후 텃밭에 앉아 흙을 만지며 생각했습니다. ‘이게 내 인생의 한말이구나.’ 회사의 숫자, 목표, 성과 같은 것보다 훨씬 실감나는 무게였습니다. 작은 콩알들이 내 마음의 저울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남은 한 문장
그날 이후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무게엔 마음이 들어 있다.”
누군가 다시 “콩 한말은 몇키로예요?” 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할 겁니다.
“대략 7.5킬로쯤 되지만, 진짜 무게는 손끝과 마음에 달렸어요.”
그건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체험의 무게입니다. 오늘도 저는 제 삶의 한말을 천천히 채워가고 있습니다.
콩 한말은 몇키로, 이제 그 질문은 저에게 숫자가 아닌 ‘온기’로 남았습니다.